흔히 '데드볼(Dead Ball)' 상황이라고 불리는 세트피스. 과거에는 경기의 흐름을 끊는 부수적인 요소로 여겨지기도 했지만, 현대 축구에서는 승패를 가르는 결정적인 변수로 그 중요성이 날로 커져왔습니다. 정교하게 준비된 코너킥, 날카로운 프리킥, 심지어 스로인까지, 세트피스는 이제 치밀한 전략과 과학적인 분석이 요구되는 '제5의 국면'으로 진화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현대 축구에서 세트피스가 왜 중요해졌는지, 공격과 수비에서의 주요 전략은 무엇인지, 그리고 세트피스 전문 코치와 데이터 분석의 역할은 무엇인지 심층적으로 탐구합니다.
골대의 1/3은 여기서? 세트피스, 현대 축구의 '제5의 국면'
축구 경기는 크게 공격, 수비, 그리고 공격에서 수비로,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되는 두 가지 국면, 즉 네 가지 국면으로 이루어진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현대 축구 분석가들은 여기에 '제5의 국면'으로 세트피스를 추가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코너킥, 프리킥, 페널티킥, 스로인 등 경기가 잠시 멈춘 상태에서 정해진 규칙에 따라 다시 시작되는 모든 상황을 의미하는 세트피스는, 실제로 전체 득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기 때문입니다. 통계에 따르면 유럽 상위 리그에서는 적게는 25%, 많게는 35% 이상의 골이 세트피스 상황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이는 거의 세 골 중 한 골이 세트피스에서 비롯된다는 의미이며, 특히 실력 차이가 크지 않아 필드 플레이만으로는 득점하기 어려운 팽팽한 경기일수록 세트피스의 중요성은 더욱 커집니다. 단 한 번의 코너킥이나 프리킥 기회가 경기의 승패를 결정짓는 경우가 비일비재해지면서, 이제 세트피스는 더 이상 운이나 우연에 맡기는 영역이 아니라, 철저한 준비와 전략, 그리고 전문성이 요구되는 승부처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죽은 볼'을 살려라: 세트피스 공격 전략의 진화
세트피스 공격의 목표는 정지된 상황을 최대한 활용하여 상대 수비의 빈틈을 만들고 득점 확률을 높이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팀들은 다양한 전략과 약속된 플레이(루틴)를 개발하고 연마합니다. 코너킥 상황에서는 키커가 공을 감아 차 골문 쪽으로 휘어지게 보내는 인스윙어(In-swinger)와 골문에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차는 아웃스윙어(Out-swinger) 중 어떤 것을 선택할지, 골문 앞 가까운 포스트(Near Post)나 먼 포스트(Far Post), 또는 페널티 스팟 주변 등 어느 지역을 목표로 공을 보낼지 미리 계획합니다. 공격수들은 상대 수비수를 따돌리기 위해 다양한 움직임을 가져가는데, 특정 선수가 상대 수비수의 움직임을 방해하는 길목을 막아서는 스크리너(Blocker/Screener) 역할을 하거나, 여러 선수가 동시에 다른 방향으로 뛰어들어가며 수비를 교란시키는 패턴 등이 사용됩니다. 짧게 연결한 후 다시 크로스를 올리는 숏코너 전략도 상대의 밀집 수비를 분산시키기 위해 자주 활용됩니다. 프리킥 상황에서는 골문과의 거리에 따라 직접 슈팅을 노리거나 간접 프리킥을 시도합니다. 직접 프리킥 시에는 상대 수비벽의 위치와 높이, 골키퍼의 위치 등을 고려하여 감아 차기, 무회전킥(너클볼) 등 다양한 슈팅 기술을 구사합니다. 간접 프리킥 상황에서는 코너킥과 유사하게 약속된 움직임과 패스를 통해 득점 기회를 만듭니다. 최근에는 스로인 상황 역시 중요한 공격 루트로 활용됩니다. 리버풀의 토마스 그론네마크 스로인 코치 사례처럼, 전문 코치를 두고 스로인 거리와 정확도를 높이거나, 스로인 상황에서 선수들의 유기적인 움직임을 통해 압박을 벗어나고 공격 기회를 창출하려는 시도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철벽 수비의 핵심: 세트피스 방어, 어떻게 막을 것인가?
공격만큼이나 세트피스 상황에서의 수비 조직력 또한 매우 중요합니다. 아무리 필드 플레이에서 좋은 수비를 보여주더라도, 세트피스 한 방에 실점하면 경기를 그르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트피스 수비에는 크게 대인 방어(Man Marking)와 지역 방어(Zonal Marking), 그리고 이 둘을 혼합한 하이브리드 방어(Hybrid Marking) 방식이 있습니다. 대인 방어는 각 수비수가 특정 상대 공격수를 일대일로 책임지고 막는 방식입니다. 책임 소재가 명확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상대 공격수의 움직임에 끌려다니다가 수비 대형이 무너지거나, 신장이나 점프력 등에서 미스매치가 발생할 경우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지역 방어는 각 수비수가 골문 앞 특정 지역을 책임지고 방어하는 방식입니다. 수비 대형을 유지하고 위험 지역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수비수 간의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거나 상대 공격수가 존(Zone) 사이의 빈 공간으로 침투할 경우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질 수 있다는 약점이 있습니다. 현대 축구에서는 이 두 가지 방식을 혼합한 하이브리드 방어가 가장 널리 사용됩니다. 상대 팀의 키가 큰 선수나 위협적인 공격수는 대인 방어로 묶어두고, 나머지 선수들은 각자 맡은 지역을 책임지는 방식입니다. 성공적인 세트피스 수비를 위해서는 선수 개개인의 집중력과 제공권 능력뿐만 아니라, 골키퍼의 적극적인 개입과 지휘 능력, 그리고 팀 전체의 유기적인 의사소통과 조직적인 움직임이 필수적입니다.
보이지 않는 손: 세트피스 전문 코치와 데이터 분석의 역할
현대 축구에서 세트피스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이를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코치의 역할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감독이나 일반 코치가 세트피스 훈련까지 담당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아스날의 니콜라스 조베르, 과거 토트넘과 이탈리아 대표팀에서 활약했던 지안니 비오처럼 오직 세트피스만을 전담하는 전문 코치를 두는 클럽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들은 방대한 비디오 분석과 데이터 분석을 통해 상대 팀의 세트피스 공격 및 수비 패턴, 약점 등을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맞춤형 공격 루틴을 설계하거나 수비 전략을 수립하는 역할을 합니다. 또한 선수들에게 세트피스 상황에서의 구체적인 움직임, 킥의 정확도 등을 집중적으로 훈련시킵니다. 데이터 분석은 세트피스 전략 수립에 더욱 과학적인 근거를 제공합니다. 예를 들어, 특정 코너킥 방향이나 킥 종류의 성공률, 특정 선수가 특정 위치에서 헤딩했을 때의 득점 확률 등을 분석하여 가장 효과적인 공격 방식을 선택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또한 상대 팀의 수비 방식(대인/지역/혼합)과 선수 배치 데이터를 분석하여 어떤 공간을 공략하는 것이 가장 유리할지 예측하기도 합니다. 세트피스 전문 코치와 데이터 분석가의 존재는 이제 팀의 세트피스 능력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보이지 않는 손'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작은 디테일이 승부를 가른다: 세트피스의 미래 가치
수비 기술과 골키퍼 능력이 상향 평준화되고 전술이 고도화되면서, 필드 플레이만으로 골을 넣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현대 축구에서 세트피스의 가치는 더욱 높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비슷한 실력의 팀들이 맞붙는 팽팽한 경기에서는 단 한 번의 세트피스 기회가 승점 3점을 결정짓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따라서 이제 세트피스는 더 이상 '운'이나 '보너스'가 아니라, 공격 및 수비 훈련과 동일한 비중으로 준비하고 연마해야 하는 핵심적인 영역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클럽들은 세트피스 효율성을 단 몇 퍼센트만 높이더라도 시즌 전체로 보면 상당한 승점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관련 분야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습니다. 세트피스 전담 코치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며, 데이터 분석과 인공지능 기술은 더욱 정교한 세트피스 전략 개발에 활용될 것입니다. 앞으로도 축구 경기의 승패를 가르는 데 있어 세트피스 상황에서의 작은 디테일과 창의적인 아이디어 싸움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점진적으로 세트피스를 지배하는 팀이 경기를 지배하는 시대가 더욱 가까워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