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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푸르트의 전술 변천사와 차붐

by 박투박 2025.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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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의 홈 경기장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이하 프랑크푸르트)는 분데스리가에서 꾸준히 경쟁력을 유지하며 성장해온 팀입니다. 시대별로 다양한 전술 변화를 거치며 수많은 명장과 레전드 선수들이 등장했습니다. 이번에는 프랑크푸르트의 전술적 변화와 함께 팀을 이끌었던 감독과 선수들의 역사적인 이야기를 살펴보고, 앞으로의 전술 방향까지 예측해봅니다. 한국의 전설적인 공격수 차붐에 대해서도 정리해봅니다.

1. 초창기 전술 (1950~1980년대) - 클래식 독일 축구와 강한 수비력

프랑크푸르트는 1950년대와 1960년대에 독일 축구의 대표적인 팀 중 하나였습니다. 당시 독일 축구는 강한 피지컬과 조직적인 플레이가 특징이었으며, 프랑크푸르트 역시 이러한 흐름에 맞춰 4-2-4 포메이션을 사용하며 공격적인 축구를 구사했습니다. 1959년, 프랑크푸르트는 독일 챔피언십 결승전에서 키커스 오펜바흐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알프레드 파펜버거와 리하르트 크레머는 빠른 측면 돌파와 정확한 크로스를 무기로 상대 수비를 무너뜨렸습니다. 1970년대에 들어서는 네덜란드의 토탈 사커라 불리는 전술이 유럽 축구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습니다. 이 당시의 프랑크푸르트는 5-3-2 포메이션을 사용하며 더욱 수비적인 전략을 채택했습니다. 데트마르 크라머 감독은 강한 압박과 조직적인 수비를 강조하며 프랑크푸르트의 경기 스타일을 변화시켰습니다.

2. 현대적 전술로의 변화 (1990~2010년대) - 빠른 역습과 압박 축구

1990년대 독일 축구는 더욱 빠르고 다이내믹한 스타일로 변화했습니다. 프랑크푸르트는 전통적인 4-4-2 포메이션을 사용하며 꽤나 공격적인 축구를 구사했습니다. 야프 슈퇴크 감독의 지도 아래 안드레아스 묄러, 토마스 베르톨트, 우베 바인과 같은 뛰어난 선수들이 활약했습니다. 특히 묄러는 창의적인 플레이메이킹으로 팀 공격의 핵심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하지만 1996년, 프랑크푸르트는 성적 부진으로 인해 2부 리그로 강등되는 위기를 겪었습니다. 그러다가 2000년대에 들어서며 전술적 유연성을 가져가는 시도를 가져가려는 노력도 보였습니다. 이때의 프랑크푸르트는 지금도 많이 사용되는 수비진형이 약간 내려서는 4-3-3 포메이션을 기반으로 빠른 역습 축구를 시도했습니다. 알렉산더 마이어는 뛰어난 결정력과 제공권을 바탕으로 많은 골을 기록하며 팀의 공격을 이끌어 프랑크푸르트의 레전드로 남아 있으며, 2015년에는 분데스리가 득점왕을 차지했습니다.

3. 현재와 미래의 전술 방향 (2020년대 이후) - 하이브리드 전술과 유연성

최근 프랑크푸르트는 하이브리드 전술을 활용하여 상대 팀에 맞춰 전술을 유연하게 변화시키는 방식으로 경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2020년대의 전술적인 특징이라면 3-4-2-1 포메이션을 활용하는데, 수비시에는 5-4-1의 형태로 전환하여 양쪽 윙백이 내려와 5백의 벽을 만들어 상대의 공격을 최대한 차단하고, 공격 시에는 다시 양쪽 윙백이 올라서며 3-4-3의 형태로 빠르게 전환하여 역습을 노리는 전략을 사용했습니다. 수비 지향적인 팀이나 감독들이 지금도 즐겨 사용하는 방식의 포메이션과 전술 형태입니다. 그런데 최근 프랑크푸르트의 경기를 보면 앞으로도 더욱 전술적인 유연성을 키울 것으로 예상됩니다. 현재의 프랑크푸르트는 절대적인 강팀으로 분류되고 있지 않은 만큼, 하이브리드 전술을 더욱 강화하며 상대 팀에 맞춘 변화를 줄 것이 더 팀에 도움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젊은 유망주 육성을 통해 빠르고 활동량이 많은 축구를 지속해왔기 때문에 앞으로도 압박 강도를 조절하면서도 공격적인 플레이를 유지하는 것이 목표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4. 프랑크푸르트의 전설 - 차붐

이러한 프랑크푸르트 역시 대한민국과도 연관이 있는 분데스리가의 팀입니다. 1980년대, 한국인에게도 전설인 '차붐(Cha-Boom)'이라는 한국인 스트라이커의 등장은 독일 분데스리가에 엄청난 열광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인 차범근입니다. 차범근은 1978년 독일 다름슈타트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지만, 이듬해 프랑크푸르트로 이적하며 본격적인 전설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프랑크푸르트는 1970년대 DFB-포칼 우승을 차지했지만, 1980년대 초반까지 뚜렷한 성적을 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뛰어난 신체 조건, 빠른 스피드, 강력한 슈팅을 바탕으로 차붐은 프랑크푸르트의 공격을 이끌었습니다. 그는 1979-80 시즌 UEFA컵에서 11골을 기록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고, 분데스리가에서도 10골을 넣으며 맹활약했습니다. 차범근의 활약에 힘입어 프랑크푸르트는 1980년 DFB-포칼 우승을 차지하며 1970년대의 영광을 재현했습니다. 차범근은 프랑크푸르트에서 4시즌 동안 122경기에 출전하여 46골을 기록했습니다. 그는 분데스리가에서 2점대의 평균 평점을 유지했으며, 주간 MVP에 5번, 주간 베스트 11에 19번 선정되었습니다. 또한, 1980년과 1982년에는 '키커 랑리스테'에서 WK (월드클래스) 등급을 받으며 세계적인 선수로 인정받았습니다. 차범근의 폭발적인 슛은 마치 폭탄이 터지는 것 같다고 하여 프랑크푸르트 팬들에게 '차붐'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후 차범근은 1983년, 바이어 레버쿠젠으로 이적했지만, 프랑크푸르트에서 보여준 그의 활약은 프랑크푸르트의 황금기를 이끌었으며, 지금까지도 팀의 레전드 선수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의 축구팬들에게도 레버쿠젠만큼이나 프랑크푸르트는 친근한 이미지의 팀이 되었습니다.

결론

프랑크푸르트는 시대별로 다양한 전술을 시도하며 변화해왔습니다. 1950~60년대에는 전통적인 독일식 축구를 기반으로 하였으며, 1990년대 이후에는 공격적인 스타일을 시도했습니다. 2020년대에는 하이브리드 전술을 바탕으로 상대에 맞춰 전략을 조절하는 유연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프랑크푸르트는 조금 더 정교한 전술 변화와 젊은 선수들의 성장으로 도르트문트나 레버쿠젠처럼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할 것이 기대가 되기도 하는 팀입니다. 차근차근 미래를 준비하는 팀인 만큼 프랑크푸르트가 유럽 무대에서 또 한 번 신흥 강자로 돌풍을 일으킬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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