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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P & FSR: 축구판 머니 게임의 규칙

by 박투박 2025. 4.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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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EFA 유럽축구연맹
유럽축구연맹 (UEFA)

현대 축구는 천문학적인 돈이 오가는 거대한 산업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구단들의 과도한 지출 경쟁은 재정 파탄과 불공정 경쟁을 야기하기도 합니다. 유럽축구연맹(UEFA)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FFP(Financial Fair Play), 즉 재정적 페어플레이 규정을 도입했습니다. 최근에는 '재정 지속가능성 규정(FSR)'으로 개편되기도 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FFP/FSR 규정이 왜 등장했으며, 핵심 원칙은 무엇인지, 어떤 순기능과 역기능을 가졌는지, 그리고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그 모든 것을 상세하게 알아봅니다.

FFP란 무엇인가?: 유럽 축구 재정 건전성 규제의 탄생

FFP, 즉 재정적 페어플레이(Financial Fair Play)는 유럽축구연맹(UEFA)이 주관하는 클럽 대항전(챔피언스리그, 유로파리그 등)에 참가하는 클럽들의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2010년대 초반(2011-12 시즌부터 점진적 도입)에 도입한 규제 시스템입니다. 그 배경에는 2000년대 후반부터 심화된 일부 유럽 축구 클럽들의 심각한 재정 문제가 있었습니다. 새로운 부자 구단주가 등장한 첼시, 맨체스터 시티 같은 클럽들이 단기간의 성공을 위해 선수 영입과 높은 연봉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기 시작했고, 이에 질세라 다른 클럽들도 지출 경쟁에 뛰어들면서 많은 클럽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부채를 떠안게 되었습니다. 심한 경우 재정 파탄으로 클럽이 해체 위기에 놓이는 사례까지 발생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단순히 개별 클럽의 문제를 넘어 유럽 축구 전체의 재정적 안정성을 위협하고, 부자 구단과 그렇지 못한 구단 간의 격차를 심화시켜 경쟁의 공정성을 해친다는 우려를 낳았습니다. UEFA는 이러한 위기감 속에서 클럽들이 무분별한 지출을 자제하고, 벌어들이는 수입 범위 내에서 건전하게 운영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FFP 규정을 도입하게 되었습니다.

'버는 만큼만 써라': FFP의 핵심 원칙과 주요 규정

초기 FFP 규정의 가장 핵심적인 원칙은 '손익분기점(Break-even Requirement)' 규정이었습니다. 이는 쉽게 말해 '버는 만큼만 써라'는 원칙으로, 클럽들이 특정 평가 기간(일반적으로 3년) 동안 축구 관련 지출(선수 이적료 상각액, 선수 및 직원 임금, 재무 비용 등)을 축구 관련 수입(중계권료, 입장권 판매, 스폰서십, 광고, 선수 판매 수익 등) 이내로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물론 약간의 손실(정해진 허용 범위 내)은 용인되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구단주의 직접적인 투자나 기부는 수입으로 인정되지 않아, 단순히 부자 구단주가 돈을 쏟아붓는 방식으로는 이 규정을 충족시키기 어렵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다만, 클럽의 장기적인 발전에 도움이 되는 투자, 예를 들어 경기장 건설 및 개보수, 훈련 시설 개선, 유소년 육성 프로그램, 여자 축구팀 운영 등에 대한 지출은 손익분기점 계산에서 제외되어 투자를 장려했습니다. UEFA는 클럽들의 재정 자료를 제출받아 이 규정 준수 여부를 감시했으며, 규정을 위반한 클럽에게는 경고, 벌금, 선수 영입 금지, 유럽 대항전 참가 자격 박탈 등 단계적인 제재를 가할 수 있었습니다.

FFP의 순기능: 부채 감소와 리그 안정화 효과?

FFP 규정 도입 이후, UEFA는 유럽 클럽들의 전반적인 재정 상태가 개선되었다고 발표했습니다. 실제로 규정 시행 초기에는 많은 클럽들의 부채 규모가 감소하고 적자 폭이 줄어드는 통계적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클럽들이 이전보다 신중하게 예산을 계획하고 지출을 관리하게 되면서, 무분별한 지출 경쟁으로 인한 재정 파탄 위험이 어느 정도 감소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있었습니다. 또한, 경기장이나 훈련 시설, 유소년 육성 등 장기적인 인프라 투자를 장려하는 효과도 있었습니다. 일부에서는 FFP가 클럽 간의 과도한 지출 경쟁을 억제하여 리그 전체의 재정적 안정성과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모든 클럽이 비슷한 재정 규칙 아래 경쟁하게 되므로, 좀 더 공정한 경쟁 환경이 조성될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습니다.

'부자 구단'을 위한 규칙? FFP를 둘러싼 비판과 논란

하지만 FFP는 도입 초기부터 수많은 비판과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가장 큰 비판은 FFP가 결국 기존의 '부자 구단'들에게만 유리하고, 새롭게 성장하려는 '신흥 강호'들의 도전을 가로막는 '현상 유지(Status Quo)' 규칙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이미 막대한 수익 기반(전 세계 팬덤, 높은 중계권료 배분, 거대 스폰서십 등)을 갖춘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같은 전통적인 강호들은 FFP 규정 아래에서도 여전히 많은 돈을 쓸 수 있는 반면, 새롭게 투자자를 맞이하여 급성장을 꿈꾸는 클럽들은 FFP 때문에 과감한 투자를 하기 어려워져 격차를 좁히기 힘들다는 지적이었습니다. 또한, 스폰서십 계약의 공정성 문제도 끊임없이 제기되었습니다. 특히 구단주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업과의 스폰서십 계약(Related-party Transaction) 가치를 부풀려 수입을 늘리는 방식으로 FFP를 우회하려 한다는 의혹이 맨체스터 시티나 파리 생제르맹 같은 클럽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되었고, 이는 '재정적 도핑(Financial Doping)'이라는 비판으로 이어졌습니다. UEFA의 규정 적용 및 처벌 기준이 모호하고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비판과 함께, 맨체스터 시티가 스포츠중재재판소(CAS) 항소를 통해 유럽 대항전 출전 금지 징계를 뒤집는 등 규정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클럽들의 수입이 급감하면서 FFP 규정을 일시적으로 완화해야 했던 상황은 FFP의 경직성을 보여주는 사례가 되기도 했습니다.

FFP의 진화: '재정 지속가능성 규정(FSR)'으로의 변화

이러한 비판과 문제점들을 인식한 UEFA는 기존 FFP 규정을 대대적으로 개편하여, 2022-23 시즌부터 새로운 '재정 지속가능성 규정(Financial Sustainability Regulations, FSR)'을 단계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FSR은 기존 FFP의 기본 목표인 재정 건전성 확보는 유지하면서도,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던 부분들을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새로운 규정의 핵심적인 변화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선수단 비용 비율(Squad Cost Ratio)' 규정의 도입입니다. 이는 클럽의 총수입 대비 선수 및 감독 임금, 선수 영입 시 발생한 이적료 상각액, 에이전트 수수료 등의 합계액 비율을 일정 수준 이하로 제한하는 것입니다. 이 비율은 점진적으로 강화되어 최종적으로는 70% 수준을 목표로 합니다. 이는 수입과 직접 연동하여 지출을 통제함으로써, 특히 임금과 이적료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둘째, '지불 능력(Solvency)' 규정 강화입니다. 다른 클럽이나 직원, 세무 당국에 대한 지급 기한을 어기는 클럽에 대해 더 엄격한 제재를 가합니다. 셋째, 기존의 손익분기점 규정은 '재정 안정성 요구 조건(Football Earnings Rule)'으로 변경되었습니다. 허용되는 손실 규모가 이전보다 다소 완화되었지만, 여전히 클럽의 재정 상태를 모니터링하는 역할을 합니다. FSR은 기존 FFP보다 클럽의 지속 가능한 투자를 장려하면서도, 과도한 지출, 특히 선수단 운영 비용을 직접적으로 통제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도 이 새로운 규정들이 점진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과도기 단계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끝나지 않은 논쟁: FFP/FSR의 미래와 과제

FFP에서 FSR로의 변화는 유럽 축구의 재정 규제가 시대의 변화와 현실적인 문제점들을 반영하여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재정 규제를 둘러싼 근본적인 논쟁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재정적 안정성 확보라는 목표와 공정한 경쟁 환경 조성, 그리고 클럽의 자유로운 투자와 성장을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입니다. 특히 국가 자본이 투입된 클럽들이나 멀티 클럽 소유 모델의 확산은 FSR 체제 하에서도 새로운 형태의 재정적 불균형이나 규제 회피 문제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또한, UEFA의 FSR과 별개로 프리미어리그의 자체적인 수익성 및 지속가능성 규칙(PSR)처럼 각국 리그별로 다른 재정 규제가 존재한다는 점도 복잡성을 더하는 요인입니다. 앞으로 FSR 규정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유럽 축구계의 재정 건전성과 경쟁 균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리고 또 어떤 새로운 도전과 변화에 직면하게 될지 지켜보는 것은 현대 축구를 이해하는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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